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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그러진 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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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음빛 작성일18-01-04 15:11 조회67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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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신문/기사입력/2018/01/03[17:48]

찌그러진 항아리

 

아이를 출산한 지 3개월이 되었다. 급격히 밀려오는 것이 나를 괴롭게 한다. 숨을 쉬기가 싫고 온 몸이 답답하다. 출산한 내 몸이 마치 찌그러진 항아리 같다. 내 몸의 변화는 예상했지만 이유모를 허전함이 나를 우울하게 한다. 그토록 기다리고 보고 싶었던 갓 태어난 아이도 보기가 싫고, 걱정하고 수고해주는 남편도 귀찮고 밉다.

 

아이를 출산하였다고 여기저기서 축하메시지를 받는 것도 귀찮고, 선물보따리를 사들고 오는 지인들도 그리 반갑지 않다. 그냥 나를 가만히 내버려두면 좋게다 하고 소리치고 싶다. 방문객들이 흔히 하는 덕담으로 아이가 나를 닮았다느니 남편을 닮았다느니 하는 그 어떤 말도 가식적으로 들린다.

 

그래서 나는 출산하였다고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의 축하방문을 거절하였다. 그리고 문자로 내게 보내는 축하메시지에 답장도 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집안에서 밖으로 나가지 않고 있다. 나는 세상으로부터 모든 문을 닫았다. 지금 나를 강하게 붙들고 옭아매고 있는 것은 우울이다.

 

그런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무엇에 이끌린 듯 버릇처럼 베란다에 위태롭게 앉아 바깥을 쳐다보기 시작하였다. 삶에 대한 애착이 없어지고 사람들도 싫어지기 시작하다가 이제는 나라는 존재가 무겁게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내 자신이 왜 살고 있는지, 그리고 내가 살아야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래서 나의 미래도 암흑으로 그려진다.

 

그저께는 남편이 직장에서 회식이 있다며 밤늦게 술에 취해 집으로 들어왔다. 이때 나는 폭발하고 말았다. 술에 취한 남편을 향해 나는 이혼하자고 했다. 남편은 뜬금없이 왜 그러느냐며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다짜고짜 이혼하기 싫으면 내가 죽어버리겠다고 하였다. 나의 극단적이고 파괴적인 모습에 우리가정은 엉망이 되어가고 있다. 나뿐만 아니라 갓난아이도 불안을 느끼는지 밤낮 울며 힘들어하고 있고 남편도 하루하루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다고 지친모습을 내 비친다.

 

나는 살고자 하는 삶의 의욕이 없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그토록 꿈꾸며 기다리던 가정의 행복이 있었다. 거기에는 아이와 더불어 나와 남편이 함께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누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이를 출산한 후 지금은 아이도 남편도 모두 귀찮고 싫다. 무엇보다도 내 자신이 허무하고 보잘 것 없다는 생각과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은 마음으로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나는 산후우울증을 앓고 있는 것 같다.

 

여성에게 있어서 신체의 변화는 곧 존재의 변화만큼이나 예민하고 민감한 문제이다. 특히 임신과 출산은 여성이 오롯이 받아들여야하는 자신의 일부와의 끊임없는 변화의 적응과정이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적응해 나아가는가는 삶의 의미와 깊게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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