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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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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음빛 작성일17-08-07 21:09 조회81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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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신문/기사입력/2017/08/01[18:13}

빵집

 

회사에서 퇴근 후 집으로 갔다. 아내는 내게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하고 아이들은 아빠를 투명인간처럼 쳐다보면서도 반응이 없다. 이러한 생활을 한 지 벌써 십 오년 되었다. 구석진 작은방에 홀로 기거하다보니 흩트려진 옷과 물건들이 이제는 익숙한 풍경이다. 마치 버려진 휴지조각처럼 내 신세와 비슷하다.

 

나는 그다지 잘못한 일이 없는 것 같다. 열심히 일만 하였다. 오로지 일에만 열중하였다.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아침에 출근하여 회사 일에 열심이었고 퇴근하면 집으로 바로 들어왔다. 그리고 밥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냥 열심히 살면 된다는 생각에 집에 와서 밥 먹고 잠자고 회사에 출근하고 일한 후 퇴근하여 집으로 왔다.

 

그런데 아내와 아이들은 나를 밀어낸다. 그리고 내가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신호를 가끔 보낸다. 그럴 때 마다 나는 내가 뭘 어쨌다고 그러는 거야, 나는 열심히 일했는데 왜 나를 밀어내는 거야이러한 나의 마음의 소리를 밖으로 내지는 못한다. 왜냐면 나는 그것을 밖으로 내어본 적이 없다. 밖으로 내 목소리를 내면 마치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는 두려움이 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내게 낯선 아주머니에게 엄마하고 불러보라는 장면이 떠오른다.

 

내가 다섯 살 무렵 아버지는 나를 밖으로 불러내었다. 집에는 어머니가 계시기 때문이었다. 나는 영문도 모르고 아버지를 따라 빵집으로 갔다. 그곳에는 어떤 아주머니가 계셨다. 그 아주머니는 나를 상냥하게 맞이해주었다. 아버지는 자리에 앉으면서 내게 그 아주머니께 엄마라고 불러보라고 했다. 나는 순간 숨이 멎었고 빵집에 있는 모든 것이 뿌옇게 흐려졌다. 그날 먹은 빵은 구린내가 났고 구질구질했다. 이후 나는 빵집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날 이후 나는 아버지라는 이름을 불러본 적이 없다. 내게서 아버지란 존재를 마음으로부터 지워버렸다.

 

내 마음에서 아버지를 지운 순간부터 남자로 살아가는 것과 아버지로 살아가는 것을 학습할 기회를 놓친 것 같다. 내 아내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 아이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오로지 아버지처럼 외도만 하지 않으면 최고로 좋은 남편이고 아빠인줄 알고 살아왔다.

 

하지만 아내는 내게 대화를 하면서 살자고 하였고 아이들은 아빠와 함께 놀고 싶다고 했던 말들이 십 오년이 지난 지금에야 귀에 들어온다. 그동안 내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던 것인 아버지처럼 외도만 하지 않으면 된다는 것 때문에, 아내와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음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마음의 자물쇠가 어린 시절에 머물게 하여 성인으로서 살아야하는 다른 세상을 보지 못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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