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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픔과 구수한 어묵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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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음빛 작성일17-01-04 22:45 조회74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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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픔과 구수한 어묵냄새’

윤정화 심리칼럼

화성신문/기사입력/2017/01/04[13:48]

남편은 늘 내게 짜증을 낸다. 자신이 기분이 나쁜 것도 집안에 여자가 잘 못 들어와서 그렇단다. 시댁식구들이 기분 나쁜일이 생겨도 집안에 여자가 잘못 들어와서 그렇다고 내게 자신의 스트레스를 푼다. 그리고 시댁식구들의 생일이 있을 때는 백화점을 돌며 선물사러 신이나서 돌아다닌다. 하지만 아내와 아이들의 생일에는 단 한 번도 선물을 사준적이 없다. 

 

시동생이 군에서 휴가를 받아 우리집에 찾아왔다. 남편은 우리집에 돈이 없는 것을 알면서도 이웃집에가서 시동생에게 줄 용돈을 빌려오란다. 그렇지 않으면 이 집에서 나가버리란다. 나는 이웃집을 찾아가 시동생에게 줄 용돈을 빌리러 갔다. 참으로 비참하고 창피하다.

 

월급날이 되어 이웃집에 빌린돈을 갚아야 하는데 남편이 벌어온 월급에서 전기세 물세 그리고 남편이 결혼할 때 빚을 낸 할부금을 빼고 나니 ‘0’원이다. 나는 과외를 해 이웃집에 빌린돈을 갚았다. 

 

남편은 이때부터 자신의 돈은 자신 것이고 나는 과외를 해서 아이들을 먹여 살리면 된다며 노골적으로 돈을 주지 않았다. 나는 이를 악물고 살아왔다. 비참하고 슬펐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왜냐면 나의 자존심이었다. 나는 누군가로 인해 비참해진다는 것이 싫었다. 내 자신이 밥도 못 먹을 정도로 비참하다는 것을 어느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 자신은 잘 먹고 잘 돌아다녔다. 왜냐면 남편은 월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시동생 집들이에 함께 갔다. 나는 배고픔을 참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길가에 있는 포장마차에서 구수한 어묵냄새가 내 코를 자극했다. 나는 남편에게 버스가 올 때까지 시간여유가 있으니 어묵하나만 먹고 가고 싶다고 했다. 남편은 돈이 없다며 두 눈을 부라려서 주변사람들이 눈치를 차릴 정도였다. 나는 창피하기도 하고 비참하기도 해 꾹꾹 참았다.

 

이렇게 내 먹을 것과 내 아이들이 먹을 것을 내가 과외하면서 번 돈으로 살아온 세월이 어언 25년이다. 이제 와서 남편은 자신이 현재 빚이 몇 억이 된단다. 그 빚의 원인은 주식으로 다 날렸단다. 그래서 나와 함께 빚을 갚으며 오순도순 살고 싶단다. 자신의 빚도 함께 갚는 것이 가족이란다. 그 빚을 갚아줄 가족이 바로 나란다.

 

과거 남편은 월급을 받으며 돈이 있을 때는 아내와 자식에게 쓰는 돈이 아깝다 했다. 하지만 시댁식구들에게 쓰는 돈은 아깝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돈이란 시댁식구들을 위해 쓰려고 번다’며 열심히 그들과 함께 재미있게 살아왔다. 그때 나와 아이들은 내가 과외하면서 번 돈으로 근근이 이어온 삶이었다. 남편에게는 가족이 시댁식구들이었다.

 

이제와서 남편은 빚이 몇 억이 있다며 함께 오순도순 가족끼리 자신의 빚을 갚으며 잘 살잔다. 그리고 그 빚을 함께 갚잔다. 성인이 된 아이들도 아빠가 어이없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엄마가 더 이상 고생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답답하고 속상하다. 그리고 아프고 슬프다. 어찌해야할지! 몇 억이 되는 빌딩을 사 들고 와서 나와 함께하자 해도 마음이 편치 않은데... 싫다. 정말 싫다. 나는 어찌해야할지! 누가 한마디 내게 해주세요. 내가 정신이 번쩍 들도록!

 

싫어하는 사람을 상대하는 것도 하나의 지혜다. -그라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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